만들어진 신
우리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생각하는 인간이 겸손으로 채워야 하는 장엄한 구조다.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나약한 마음을 노예처럼 위축시키는, 맹목적인 편견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거라. 이성을 제자리에 앉혀놓고 모든 사실, 모든 견해가 그녀의 재판을 거치도록 하거라. 신의 존재 여부까지도 대담하게 묻고, 신이 존재한댜면, 맹목적인 두려움보다 이성에 경의를 표하는 쪽을 더 용인할테니.
'기도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의 재치 만점의 정의를 떠올려보자.
=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진실인 것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성을 지닐 때가 많다.
모든 종교는 똑같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축제일이 서로 다른 죄의식이다.
설령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이런 말을 했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 그것이 있든 없든, 선한 사람은 선행을 하고 나쁜 사람은 악행을 한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한다면 그것은 종교 때문이다."
파스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종교 신앙은 신앙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한, 빈 라덴과 자살 테러범들의 신앙에 대한 존중을 유보하기도 어렵다. 너무나 평범하기에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대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종교 신앙을 자동적으로 존중하라는 원칙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갖은 노력을 다하며 사람들에게 '극단주의' 신앙이 아닌 신앙 자체를 반대하라고 경고하는 한 가지 이유다. '온건한' 종교의 가르침은 비록 그 자체로는 극단적이지 않아도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 된다.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다. 신앙은 그 어떤 정당화도 요구하지 않고 어떤 논증에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다.
여기 또 하나의 멋진 장면이 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나는 <인디펜던트>지를 뒤적이다가 어느 학교의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포착한 가슴 뭉클한 장면을 보았다.
"섀드브리트(시크교도), 무샤라프(이슬람교도), 아델레(기독교도), 모두 네 살."
멋지다고? 가슴 뭉클하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결코 그것은 기괴할 뿐이다. 올바른 성정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네 살짜리 아이들에게 자기 부모의 우주적이고 신학적인 견해를 꼬리표로 갖다 붙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같은 사진에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섀드브리트(케인스학파), 무샤라프(통화론자), 아델레(마르크스주의자). 모두 네 살."
그러면 분노에 가득한 항의 편지들이 쏟아지지 않겠는가? 그럴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종교의 기이한 특권적인 지위 때문에, 항의는 커녕 항의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소리도 들은 바 없다.
제목이 이렇게 붙었다면 얼마나 항의가 들어왔을지 상상해보라.
"섀드브리트(무신론자), 무샤라프(불가지론자), 아델레(세속적 인본주의자), 모두 네 살."
아이들을 정말로 그렇게 키우고 있는지 부모들을 조사하려고 들지 않을까?
버트란트 러셀이 1925년에 쓴 에세이 <내가 믿는 것>中에서..
"나는 죽어서 썩으면 내 자아 중에 살아남는 것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젊지 않으며 삶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사멸한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짓을 경멸해야 한다. 행복은 언젠가 끝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진짜 행복이며, 사유와 사랑도 한없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두대에 설 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바로 그 자긍심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올바로 고찰해야 한다. 설령 활짝 열린 과학의 창문들이, 처음에는 대대로 내려온 인간화한 신화들이라는 안락한 실내 온기에 적응되어 있던 우리를 덜덜 떨게 할지라도, 결국에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드넓은 세상이 우리 앞에 장엄함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이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으로 돌아가서, 물론 그 말은 옳다. 하지만 우주가 당연히 우리를 위로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믿음은 다소 유치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로 때문이 아니라 교육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 그리고 대안(믿지 않음)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이 아닐까...
☆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