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사십대 / 고정희...........마흔, 그 비망록 / 이정자

오직~ 2008. 5. 27. 01:17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遺稿詩集에서 =


 

 

 

 

 

 

꽃의 중심,
그 황홀과 슬픔 속을 지나왔으나
그 어디에도 넘쳐보지 못했기에
나는 뜨거운 역사 하나 갖지 못했다

몸이 아파 마음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픈 건지 모를 정도로
슬픔의 핵을 지나왔으나 처절한 목마름도
가시처럼 돋아나는 결핍도 몰랐다
고통, 그 참혹한 독성이
나의 심장을 관통하지 못했다

얼마나 다행이더냐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그 어디에도
온전히 나를 내던져 본 적 없는
중용의 도란
때론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 것이더냐

신생의 비밀,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내 알지 못하니
어디에도 나의 역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