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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라면 그를 전쟁터로 몰지 마라 (중앙일보에 말한다)

오직~ 2006. 11. 16. 22:55

강준만 교수 기고문



지난날보다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제 이분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지면 지식인은 자기 수정을 해야 한다. 단시일에 바꾸려는 것, 비타협적인 것, 독선, 과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군부독재 때처럼 무리수를 쓰면서 전면 투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2005년 봄에 나온 리영희의 발언이다.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리영희는 ‘사상의 은사’라기보다는 ‘성찰의 대부’다. 1991년 1월26일 그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강연을 한 이래로 그의 ‘사상의 제자’들에게 위와 같이 끊임없는 ‘평생교육’을 실시해 왔다. 언젠가 <월간조선>은 “노무현은 리영희의 가장 충실한 제자”라고 주장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권이 지금처럼 큰 어려움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앙일보>는 리영희가 남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 맹(盲)’‘북한 맹(盲)’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 주장을 편 글을 소개했을 뿐이며 공과를 공정하게 소개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편집 효과상 두드러지는 건 그 메시지다. 여기에 리영희의 정신적 제자였음을 자처한 내부 논객의 비슷한 비판까지 가세했다.

 

나름대론 진지한 비판이었겠지만 다소 우스꽝스러운 ‘리영희 숭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영희는 그렇게까지 위대하진 않다. ‘인물 결정론’도 정도 문제지, 너무 심했다.

 

신문은 ‘분위기 상품’이다. 편집은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편집국 분위기의 산물이다. 보수신문들은 노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이념·색깔 전쟁으로 몰아가는 데에 여념이 없다. 삼성과의 관계라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안고 있는 <중앙일보>는 그래도 그간 나름의 ‘자본의 합리성’이라는 미덕을 보여왔다. 그랬던 <중앙일보>가 분위기에 휩쓸려 리영희마저 그 전쟁의 한복판에 세우는 건가?

 

2005년 3월15일 리영희가 회고록 <대화> 출간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중앙일보> 기사는 리영희를 ‘원로 중의 원로’라고 부르며 이를 소제목으로 뽑았다. 76살이라는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영희에 대한 존경이 묻어난 기사였다. 기자마다 색깔이 다르다곤 하지만, 어떤 게 <중앙일보>의 진심인지 궁금하다.

 

그래도 <중앙일보>는 말이 통할 것 같아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리영희 탐구를 제대로 하기 바란다. 전 사원이 <대화>를 읽고 독서 토론회를 해보길 권한다. 바로 이 책에 국난 극복의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80년대 후반 운동권을 풍미했던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분열주의적 공쟁(空爭)으로 비판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분열에 대한 환멸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비극의 원인을 외세 탓으로 돌리는 ‘민족적 면책론’도 거부했다. 그는 뼈아픈 자기비판과 민족적 각성을 요구했다. 나라를 망친 것은 지도층이나 지배계층이고 나라를 염려하고 지킨 것은 대중이나 민중이라는 관점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교조주의적 도그마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런 문제들을 공부하면서 고민하는 <중앙일보>의 모습을 보고 싶다. 노 정권을 때려서 나라가 잘 될 것 같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노 정권을 넘어선 애국적 우파의 모습을 보여달라. 한국 저널리즘의 그 지독한 ‘이념 과잉, 정치 과잉’ 풍토와 결별하고, 보수의 성찰과 건강성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매진해 달라. 그럴 때에 비로소 노 정권의 낮은 지지도는 보수신문들 탓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우매함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반감과 증오의 악순환 체제 아래에선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성공할 수 없다. 이게 바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성찰의 씨가 말라 극단적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리영희가 던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리영희는 좌우(左右)를 뛰어넘는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언론학

20061116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