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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죗값’은 370억달러?/유재현

by 오직~ 2006. 9. 22.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기부한 선행 인정해도
소프트웨어 다양성 말살한 독점자본의 악행 못덮는다
‘오픈소스운동’에 한푼도 내지 않을 갑부재단
370억달러가 아니라 천억달러로도 구제불능

 

 

세계 1위의 부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자기 재산의 80퍼센트를 자선사업에 내 던진 선행으로 한동안 세계를 감동시켰다. 세계 제일의 부자답게 금액으로는 370억달러에 이른다. 내가 늘 고깝게 여기는 세계적 악당 중의 하나가 빌 게이츠인 탓에 어쩔 수 없이 남은 20퍼센트를 먼저 떠올렸다. 얼추 92억달러. 세계인구의 99.999퍼센트에게는 도긴개긴이다.

 

생각의 시작은 이렇게 삐딱했지만 여하튼 당대의 부자들이 상상조차 하지 않는 일을 해치운 그 기백(?)만큼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빌게이츠의 수퍼울트라급 선행은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부자들의 악행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식이다. 삼성의 이건희를 보시라. 세계의 부자서열에 매겨지기는 할지언정 빌 게이츠 선생의 발꿈치를 핥으면 고작인 주제에 그 잘난 부를 아들인 이재용에게 세습하기 위해 벌인, 벌이고 있는 작태란 얼마나 추악하고 한심하단 말인가. 정주영을 돌아보시라. 왕자의 난이란 전근대적인 쇼까지 감수하며 정씨의 현대를 유지하기 위해 그토록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밖에 크고 작은 부자들이 선보였고 선보이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악행에 대해서는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아마도 돈을 쓰는 법에 대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부자들의 사악하고 메마른 양심에 얼마간의 교훈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게이츠 선생의 선행을 귀감으로 한다면 세상은 좀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기만 한다면 악행도 선행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널리 알려진 빌 게이츠의 악행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있게 했던 시작인 엠에스도스(MS-DOS)는 아이비엠(IBM)의 하청을 받은 후 시애틀의 컴퓨터 동호회 아이들이 만들었던 도스를 슬쩍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게 기반을 다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30년간 도약을 거듭해오면서 선보인 행태는 무차별적인 문어발 확장과 불가사리를 연상케하는 잔인한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컴퓨터 운영체제의 독점과 그로써 얻어진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와 같은 오피스 분야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 서버, 인터넷 브라우저 등 거의 모든 핵심적 소프트웨어 분야에 손을 뻗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법 단단한 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허망하게 사라져갔다.

 

빌게이츠의 지론인 ‘점유율의 마술’이란 공적표준을 뛰어넘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s)’을 스스로 만들고 독점하는 마술로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기업과 소프트웨어는 매집당하거나 매장될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빌 게이츠는 그런 마이크로소프트를 선단에서 이끄는 최고지도자이자 비정하고 호전적인 자본가였다. 게다가 그는 당연하게도 탐욕스러운 자본가였다. 그가 유일하게 인터넷 포탈 분야에서 점유율의 마술을 부리지 못한 이유는 초기에 ‘돈이 될 것 같지 않아’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빌 게이츠의 악행은 그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롭게 등장한 정보화 사회에 미친 영향에서 두드러진다. 독점적 위치를 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탐욕은 정보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양대 핵심기술 중의 하나인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다양성을 멸절시킴으로써 더 풍부해질 수 있었던 기술과 그 기술들을 통해 피어날 수 있었던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목졸라버렸다. 그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신민 대다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밥이자 종이 되었다. 그 신민의 일상이란 ‘윈도우즈xp’가 열리는 팡파레와 함께 하루를 시작해 워드와 엑셀에 눈을 박고 윈도우즈 서버의 인포메이션 서버가 ‘MS SQL SERVER’의 데이터를 뽑아 토해내는 정보를 익스플로러를 통해 받아먹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구차한 일상이다.(포탈과 검색 분야에서 도모한 점유율 마술이 대단치 않은 성과에 그쳤기에 망정이지 빌 게이츠는 완벽한 빅 브라더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 한편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21세기 기술독점자본의 ‘나아갈 길’을 구축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적수이자 경쟁자로 꼽고 있는 구글은 기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념을 손색없이 본받아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금융시장에서 조달된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주변의 쓸 만한 기술과 기술자 등 모든 것을 빨아들여 결국은 무화시키는 구글의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던 바로 그 전략의 연속선상인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쾌척으로 바야흐로 세계최고의 갑부재단이 된 ‘빌과 멜린다 재단’이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상에 끼친 악행을 얼마간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오픈소스 운동에 거금을 투척한다거나, 꿈같은 일이지만 윈도우즈의 판권을 매입해 공개소프트웨어로 만든다거나 하는 일을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일까. 가능성은 제로다. 이 갑부재단은 단지 ‘빌과 멜린다’의 재단이기 때문이다. 후진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네크로폰테의 ‘100달러 노트북’ 프로젝트에 조롱을 퍼붓고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빌의 재단에게 뭘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자본의 선행이란 모래 위에 기록될 뿐으로 굵은 획으로 바위 위에 조각된 악행을 덮질 못한다. 그럼으로 부자가 천국에 입장하기란 낙타를 끌고 바늘구멍을 빠져나가야 하는 길이니 370억달러가 아니라 천억달러로도 구할 수 없는 길이다.

 

 

유재현/소설가

20060922 한겨레